본문 바로가기
[게임리뷰]

[리뷰] 네버윈터나이츠2. 정통 RPG로의 귀환

by 구호기사 2008. 9. 28.
728x170
어둠의 왕과 한 마법사의 싸움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RPG 게임의 매니아라면, 발더스 게이트라던가, 플레인 스케이프 토먼트, 아이스윈드 데일 같은 게임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 게임들의 공통점이라면,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TRPG 중에 하나인 던젼스 앤 드래곤즈(이 하 D&D)룰로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국내에선 캡콤의 액션게임으로 더 유명하겠지만 서양에선 RPG게임 룰로 자주 사용되며, 특히 블랙아일이 인피니티 엔진으로 만든 D&D 게임 시리즈는 훌륭한 게임성으로 많은 유저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인피니티 엔진의 2D 그래픽을 뛰어넘는 풀3D 그래픽에 최신 룰인 D&D 3rd 룰을 적용한 RPG 게임이 개발되었고, 이는 많은 팬들을 설레이게 만들었습니다.

이 작품이 바로 네버윈터나이츠(이하 NWN) 입니다.

NWN1...널 보면 내 맘이 아파...
 
이렇게 많은 이들을 설레이게 만든 뒤 등장한 NWN1은 여러가지 참신한 시도가 돋보인 게임이었습니다. 이전의 게임들과는 다르게 멀티플레이를 주력으로 지원하였고, 모듈 시스템을 통해 유저가 만든 스토리나 세계를 손쉽게 교환하거나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모듈을 만드는 툴까지 완벽히 지원해 주었기 때문에, 툴에 대한 지식과 노가다에 대한 집념만 있다면 자신만의 스토리를 지닌 게임을 만드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에만 신경써서 그런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싱글 플레이는 상당히 기대 이하였습니다. 일단 여러명의 파티원을 모두 조종하는 시스템에서, 자신의 캐릭터만 조종하고 나머지 동료(일명 헨치맨)들은 AI에 따라 자동으로 움직이게 바뀌었습니다. 이 시스템은 플레이가 편하지만, 협동플레이의 의미가 사라져 전투가 매우 재미없었습니다. 더구나 끊임없이 나오는 적들과의 계속된 전투로 네버디아나이츠라는 별명까지 붙게 됩니다. 스토리라도 좋다면 이런 단점도 덮어주겠지만, NWN1의 스토리는 한마디로 말해 생뚱맞습니다. 쓸데없이 반전을 넣으려다보니 스토리가 난잡해져서 엔딩을 보면 감동은 커녕 허탈함과 낚인 기분까지 듭니다. 덧붙여 동시 한글화 발매를 무리하게 노리다가 안드로메다 저편으로 날아가버린 번역 수준까지 겹쳐(무기를 발사하면서 'Fire!' 라고 외치는걸 '불이야!' 라고 번역한 걸 보면 어이상실...) 국내에선 상당히 오랜기간 덤핑으로 팔리는 수모를 당하게 됩니다.
(노파심으로 말하는건데, NWN1 은 졸작에 가까웠지만, 확장팩인 쉐도우 오브 언드랜타이드와 호드 오브 언더다크는 상당한 수작이니, D&D게임을 좋아한다면 한번쯤 해 볼만 합니다.)
 
이런 저런 악재가 겹쳐 D&D게임을 좋아하는 유저들 중에서도 NWN에 대해선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유저가 많았습니다. 그 때문인지 아니면 PC게임 패키지 시장의 침체 때문인지는 몰라도, 옵시디언에서 만든 NWN2는 불행히도 정발이 되지 않았습니다.

전작보다 확실히 발전한 그래픽
 
새롭게 등장한 네버윈터나이츠2(NWN2)는 전작에 비해 매우 발전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그래픽으로, 시대의 변화에 걸맞게 그래픽이 완전히 일신되었습니다. 전작의 투박한 그래픽을 새롭게 바꾸어 깔끔하면서도 섬세한 모습을 보여주며, 더욱 화려해진 광원효과로 마법이 상당히 멋지게 변했습니다. 비록 오블리비언 같은 미려한 그래픽의 게임이 먼저 등장하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묻혀버렸지만, NWN2 자체의 그래픽도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다만 광원효과를 너무 남발하다보니 고레벨 마법을 쓸 경우 피아식별조차 힘들 정도로 화면이 어지러워진다는 점이 단점입니다. 특히 성작자의 스톰 오브 벤젼스 같은 마법을 쓸 경우, 원하는 캐릭터나 적을 찾기 위해 화면을 정지시키고 커서를 하나하나 대야 할 정도로 화면 효과의 압박이 심합니다. 화려한 것도 좋지만 조금 과유불급인게 아닌지...

동료들과 함께라면 어떤 적도 무섭지 않다.
 
주인공 하나 헨치맨 하나(혹은 둘)만 데리고 다녔던 재미없는 시스템에서, 여러명의 동료를 모아 파티를 짜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원하는 동료를 컨트롤할 수 있는 시스템 덕분에, 전사 같은 재미없는 직업을 고르더라도, 다른 직업의 동료를 골라 플레이 할 수도 있습니다. 덕분에 전투는 전작보다 확실히 재미있습니다. 특히 AI 설정 부분이 상당히 세세해져, 자신이 컨트롤하지 않는 동료의 행동을 어느정도 조절할 수 있는 점이 좋습니다. 원한다면 마법사 동료가 메모라이즈한 마법을 아끼지 않고 팍팍 쓰게 할 수도 있고, 가급적 마법을 아끼면서 무기로 싸우게 할 수도 있습니다.
 
자비심 없는 아이스스톰
 
하지만 이런 설정에도 불구하고 AI에 문제가 많은 편입니다. 특히 D&D 하드코어룰로 할 경우, 앞에서 열심히 싸우는 전사들 위로 파이어볼이나 아이스스톰을 날리는 마법사 동료들 때문에, 적보다 동료가 더 무서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유저는 동료들의 팀킬에 시달리다가, 범위 공격 마법을 메모라이즈에서 전부 지워버리는 사태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외에도 다 죽어가면서도 치료마법을 제대로 쓰지 않는다던가, 적의 공격을 받아도 보호마법을 제대로 쓰지 않는 등 기본적인 AI에 문제가 많은 편입니다. 이 점은 유저들이 만든 AI 핵팩을 이용하면 상당수 개선된다는게 다행이지만, 핵팩을 쓰지 않고 기본룰로만 하는 유저의 경우 AI의 압박을 많이 받는다는게 아쉽습니다.

전작에서 찌질했던 나세르의 대변신!
 
NWN2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전쟁의 상처를 안고 있던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서, 어느날 갑자기 아웃사이더들이 공격해 옵니다.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이들을 격퇴해내었지만 마을은 다시한번 큰 상처를 입게 됩니다. 주인공의 양아버지는 아웃사이더들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듯, 숨겨놓았던 마법의 힘이 담긴 은조각을 주인공에게 건네주고는 네버윈터에 있는 친척에게 가라고 합니다. 여행을 시작한 주인공에게 은조각을 노리는 아웃사이더들, 사악한 음모를 꾸미는 러스칸의 마법사, 네버윈터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을 일으키는 정체불명의 워록이 등장하면서 NWN2의 스토리가 흘러갑니다.
 
적으로 등장하는 진영이 세 개나 되다보니 초중반까진 스토리가 매우 복잡한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중반 이후에 접어들면서 실타래가 풀리듯 스토리가 정리되기 시작하면서 상당한 몰입감을 느끼게 해 줍니다. 비록, 토먼트처럼 철학적인 주제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진 않지만, 진정한 적은 누구이고 그 내막이 무엇인가를 알아가는 과정이 상당히 흥미롭게 연출됩니다. 비슷한 영웅물임에도 불구하고 NWN1의 낚시성 스토리에 비하면, NWN2는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복선과 반전이 훌륭해, 단순한 영웅물의 형식을 띤 스토리라도 상당히 재미있게 플레이 할 수 있습니다.

훌륭한 이벤트 연출과 용서가 안되는 얼굴
 
이런 스토리를 받쳐주는 연출이야말로 NWN2의 백미입니다.
모든 중요한 대화에서 이벤트씬이 연출됩니다. 이 때,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의 음성을 지원하며, 심지어 대사에 맞춰 입이 움직이는 연출까지 있습니다. 성우들의 연기는 상당히 괜찮은 편입니다. 말썽꾸러기 나쉬카, 시니컬한 콰라, 무대포 켈가, 신랄한 샌드 등 동료의 목소리 하나하나가 매력적이고 개성을 돋보이게 해 줍니다. 동료들 뿐만 아니라 중요 NPC들 모두 음성을 지원하므로 스토리에 몰입하기에 좋습니다.
 
대사 중 주인공은 질서적이거나 혼돈적인 답변을 할 수 있고, 선하거나 악한 답변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에 따라 자신의 성향이 바뀌기도 하고 동료들에 대한 영향력이 바뀌기도 합니다. 전작에 비해 대화가 매우 중요해졌기 때문에, 전작에선 거의 쓸모가 없었던 허세, 협박, 설득 같은 대화용 스킬이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특히 가장 재미있었던 재판 이벤트의 경우, 이런 연출을 최대한으로 활용한 매우 멋진 이벤트였습니다. 주인공은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증인을 찾고 증거물을 모으며, 법정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가지 대화형 스킬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전투로 시작해서 전투로 끝난 전작에 비하면, 정말 환골탈태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만의 성을 키울 수도 있다.
 
또 하나 주목할만한 것은 자신만의 성을 키우는 시스템입니다.

발더스 게이트2에서 처음 선보인 시스템이지만, 약간의 추가 이벤트를 보고 경험치를 얻는 용도 외엔 크게 활용도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NWN2는 이를 작은 시물레이션 게임 수준 정도로 끌어올렸습니다. 플레이어는 자금을 투자해 성의 여러 부분을 개선할 수 있고, 병사들을 모아 치안을 안정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성을 발전시켜 인구를 끌어모으면 이들에게 세금을 부과해 수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성의 발전과 인구, 세금 등은 모두 부관이 관리해 주며, 플레이어는 부관과의 대화를 통해 이런 세부적인 것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특히 지금까지 도와준 여러 NPC들을 성으로 불러모으는 것도 재미있는 점입니다. 자신이 도와줬던 상인이 그 답례로 성에서 상주하면서 좀 더 싼 가격에 좋은 아이템을 파는 걸 보면 플레이어도 뿌듯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성 키우기가 단순한 미니게임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후반 스토리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도 재미있는 점입니다.
다만 성 키우기 시스템이 스토리에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그런지, 직업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발더스 게이트2에서 마법사는 타워, 바드는 극장, 도둑은 길드를 받는 식으로 달랐지만, NWN2에선 어떤 직업이든 상관없이 성을 키워야 됩니다. 스토리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조금은 아쉬습니다.

날으는 비만도마뱀에서 날지 못하는 비만도마뱀으로 퇴화한 드래곤...
 
NWN2는 전작보다 상당히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는 후속작이지만, 여러가지 단점도 눈에 띕니다.

가장 아쉬운 점이라면 제작사인 옵시디언이 유통사 아타리의 압력에 못 이겨 게임을 미완성인 상태로 발매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메인 스토리는 완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서브 이벤트는....;;)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부분이 바로 동료 시스템입니다. 특히 연애가 가능한 동료를 여럿 만들 예정이었는데, 발매에 쫓기다 보니  연애가 가능한 캐릭터가 성별별로 한명씩 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 동료들과 다양한 대화가 가능한데, 발매일에 쫓겨 후반부 대사를 못 만들었는지 대사 패턴이 후반엔 변하지 않습니다. 게임이 종반으로 치달아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있는데, 동료와 대화해보면 만났을 때 일을 얘기하고 있으니 황당할 노릇입니다.

게임 초중반부까지만 해도 대사의 볼륨이 풍부하고 이벤트도 많다는 느낌을 주는데, 후반에 들면 급하게 메인 스토리만 쫓는 느낌을 주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망할 놈의 아타리...
 
그 외에도 심한 압박을 주는 여성들의 얼굴이라던가, 기네스북에 도전하는 듯한 로딩 시간, 은근히 많은 버그, 3D 그래픽임에도 불구하고 2D 게임에 가까운 게임성 등은 여전히 개선해야 할 부분입니다. 차기작에선 하늘을 나는 드래곤을 활로 쏘아 떨어뜨리는 플레이가 가능해지면 더 좋지 않을지...

모든 사건의 원흉들...
 
사실 NWN2는 전작의 졸작스러움 때문에 선뜻 플레이할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게임이지만, 실제로 플레이하면서 전작의 단점들이 상당수 개선된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전작보다 강화된 연출과 몰입감 있는 스토리. 개성있는 동료들과 그들간에 벌어지는 다양한 이벤트, 좀 더 재미있어진 전투 시스템은 전작의 악몽을 잊게 하기 충분했습니다. 비록 세세한 단점들이 남아있긴 하지만, D&D 3.5 의 매력적인 룰을 기반으로 한 완성도 높은 시스템과, 간만에 'RPG다운' 짜임새 있는 스토리는 NWN2를 수작이라 말하기 부끄럽지 않게 해 줍니다. 또 유저들이 만든 다양한 모드와 모듈을 이용해 부족한 부분을 직접 개선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인 부분입니다.
 
RPG와 D&D를 좋아하는 유저라면 꼭 한번쯤 해볼만한 게임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게임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게 해 준, 네버윈터나이츠2 아마추어 한글화 멤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확장팩인 배신자의 가면의 한글패치를 기대해 봅니다.
그리드형(광고전용)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