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십자군에 가장 먼저 참여한 군주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안티오크 공국은 착실히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홈스의 아미르는 안티오크군에게 포위되어 절망적인 항쟁을 하다 결국 항복하고 말았고......
비잔티움 제국과도 동맹과 무역협정을 체결하게 되었다.
하지만, 비잔티움 황제에게 맨발로 기어나가 자비를 구걸했던 레이널드는 그 원한 때문에 불만이 가득한 기색이었다.
가장 큰 전투는 보에몽이 직접 군을 이끌고 포위한 아다나에서 벌어졌다.
아다나의 아르메니아인들은 누레딘이든 보에몽이든 다른 군주의 지배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결사적으로 버텼지만, 식량이 다 떨어지자 결국 성문 밖으로 뛰쳐나올수 밖에 없었다.
적이 뛰쳐나올 것을 예상하고 있던 보에몽은 공성무기를 만들지 않고 군대를 넓게 포진하고 있었다. 보에몽은 중앙에 창병과 궁수를 배치하고, 양측에 기병을 배치하여 적이 달려나오면 포위 섬멸할 계획이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더 이상 후퇴할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보에몽의 예상보다 맹렬하게 돌격하기 시작했다. 특히 용맹한 아르메니아 기병들은 보에몽이 진형을 제대로 편성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보에몽 3세의 명령에 소디어 아처들의 일제 사격이 시작되었고, 다수의 아르메니아 기병들이 화살을 맞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아르메니아군의 저항은 완강하였다. 다수의 아르메니아 기병들은 화살비를 뚫고 안티오크군으로 돌격하였다. 하지만 곧 안티오크 기사들이 측면을 포위하자 이들은 급격히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아르메니아 기병들은 맹공을 버티지 못하고 백기를 들고 패주하기 시작했다. 기병들의 패주를 본 보병대 역시 급격히 동요하기 시작하였고, 안티오크군이 가까이 다가오자 이들 역사 무기를 버리고 패주하기 시작하였다.
많은 수의 아르메니아군들이 성문으로 몰려들면서, 좁은 성문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안티오크 기사들에게 죽는 병사들보다 아르메니아군들끼리 밟혀죽은 병사들이 더 많았다.
아르메니아군의 지휘관은 아수라장 속에서 압사당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안티오크 기사들은 도망치는 아르메니아군을 따라 성내로 진입한 뒤, 성문의 경비병을 처치하고 보병대가 들어올 수 있도록 점거하였다. 곧이어 서전트와 스콰이어들로 이루어진 보병대도 성내로 돌입하였다.
광장으로 패주한 아르메니아군은 마지막으로 절망적인 저항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지휘관이 죽은데다 오랫동안 굶주린 아르메니아군들이, 사기충만한 안티오크군을 이길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아르메니아의 잔당들은 하나둘씩 안티오크군에게 쓰러지고....
결국 아다나는 보에몽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보에몽의 관대한 처분에 아르메니아인들은 감복하였고, 곧 이들은 안티오크 공국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었다.
그리고 몇개월 후.....
로저의 말대로 잉글랜드의 사자심왕 리차드 1세와, 프랑스의 존엄왕 필립 2세가 십자군에 참전을 결정하였다. 이들은 프리드리히 1세와 달리 이탈리아 해군의 힘을 빌려 해로를 통해 성지로 출발하였다.
과연 3차 십자군으로 무슬림의 세력을 누르고 십자군 왕국의 영원한 번영을 약속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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