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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탈워 : 미디블 2]/[역사정보]

[인물] 비잔티움 황제 요한네스 2세

by 구호기사 2008.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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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네스 2세 콤네누스 (1087~1143)

 
(영어의 '존' 은 '요한' 과 동일한 이름이며, 이를 비잔티움식으로 읽으면 '요한네스'가 됩니다.)
 
-능력치-
지휘력 5
기사도 0
충성심 5
신앙심 3
 
-수행원-
정신적 스승 : 언제나 젊은 주군의 옆에 있으면서 충성심을 기르도록 돕는데 필요한, 충분한 신뢰와 현명함을 갖춘 사람입니다. (통솔+1)
 
-특성-
후계자 : 이 남자는 그의 국민들의 다음대 통치자가 될 몸이며, 이미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위치에 올라있다. (지휘력 +1, 권위 +1, 개인 안전 +2)
지휘의 재능 : 군 전술에 관하여 언제나 타고난 이해력을 보였다. (지휘력 +1)
영리함 : 다른 사람에게도 그의 타고난 지혜가 또렷하게 보인다. (지휘력 +1, 무역이익 +2%, 세금이익 +2%)
사교적인 음주가 : 승리를 위한 것과 좋은 일, 또는 좋은 친구들을 위해 축배를 드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지휘력 +1, 평판 +1)
활동가 : 이 남자는 쓸데없이 움직이는 것을 좋아한다. (이동거리 +10%)
밤의 투사 : 어둠속에서 군대가 우왕좌왕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거대한 군대를 하나의 유기체처럼 지휘하는 방법을 익혔다. (야간전투시 지휘력 +1)


요한네스는 알렉시우스 1세의 장남으로, 작은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고 외모가 아주 못생겨 '무어인'(북아프리카의 베르베르인)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때문에, 비잔티움의 적들은 흑인 노예에게 자주색 황제복을 입혀 이를 조롱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추한 외모와는 달리 요한네스의 별명은 '칼로얀니스' 였는데, 이 말은 '아름다운 (요한네스)'라는 뜻이다. 이는 요한네스의 자비로운 성품과 신실한 신앙심 덕분으로, 비잔티움의 적들조차 요한네스의 용기와 성품을 인정할 정도였다.
 
요한네스는 생전에 누나인 안나 콤네누스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미디블2에선 안나의 나이가 요한네스보다 낮게 나오는데, 이는 오류이며, 실제론 안나의 나이가 더 많다.) 안나 콤네누스는 여자임에도 상당한 야심을 가지고 있어, 자신의 남편인 니케포루스 브리엔니우스를 황제로 만들려고 음모를 꾸미다 발각되었다. 여기에서 요한네스의 관대한 성품이 드러나는데, 안나는 반역죄를 저지른것 치고 매우 관대한 처분이 내려져 수녀원에 감금되는 정도로 그쳤고, 니케포루스는 음모에 비협조적이었기 때문에 어떠한 처벌도 없이 장군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후, 니케포루스는 평생 요한네스에게 충성을 바치게 된다.) 이외에도 요한네스는 언제나 적에게 관대한 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요한네스는 전장에서 용기있게 군대를 지휘하였고, 아버지만큼 뛰어난 지휘능력을 보여줬다. 그의 치세동안은 알렉시우스 치세만큼 위험한 상황은 적었지만, 페체네그족의 잔당과의 전투, 헝가리와의 전쟁, 세르비아와의 전쟁, 다니슈멘드와의 전쟁 등 다수의 위기가 있었고, 이를 모두 극복하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아버지 알렉시우스에 비해 외교적인 안목은 조금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요한네스는 예전 시칠리아와의 전쟁 때 맺은 베네치아와의 동맹에서 베네치아 상인에게 주어졌던 통상특권을 일방적으로 폐기함으로서 베네치아의 공격을 유발하였다. 결국 변변한 해군력이 없던 비잔티움은 해상봉쇄를 버티지 못하고 베네치아에게 다시 통상특권을 주게 되었는데, 이는 요한네스의 외교적인 안목이 아버지에게 미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요한네스의 최대 업적은 예전에 비잔티움의 영토였던 안티오크를 수복한 일이다. 안티오크는 투르크의 손에 넘어갔다가, 1차 십자군때 보에몽이 점령하여 안티오크 공국을 세워 비잔티움과 적대하였다. 이후 요한네스는 몇번의 원정을 통해 안티오크의 항복을 받아내었고, 이들 역시 관대한 처분을 받고 비잔티움의 종주권을 인정하게 되었다. 하지만, 안티오크를 제국의 영토로 지속적으로 편입시키는 것은 실패하였다. 이후 동방원정을 다시 준비하다가 1143년 사냥터에서 잘못 맞은 화살에 합병증이 생겨 사망하였다.
 
요한네스는 매우 신앙심이 깊어, 사치를 금하고 검소한 생활을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의 기록으론 전투를 하는 경우 외엔 언제나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기도를 올렸으며, 황제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검소하게 생활했다고 한다. 덕분인지는 몰라도, 요한네스는 아버지 알렉시우스보다 신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

(요한네스 2세의 기사도와 신앙심은 역사적 사실과 비교해 봐도 너무 낮다고 봅니다. 미디블2 제작진들이 서유럽 문헌 위주로 비잔티움 인물을 해석했는지, 비잔티움 인물들의 능력치가 대체로 안 좋은 편이죠. 뭐, 페널티 특성이 없는 것만 해도 괜찮은 편이지만 기사도와 신앙 관련 트레잇이 전혀 없는 것은 조금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요한네스는 헝가리의 공주 피오스카(비잔티움으로 시집오면서 이름을 '이레네'로 개명함)와 결혼했으며, 슬하에 8 자녀를 두었다. 부모였던 알렉시우스와 이레네 두카스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요한네스와 피오스카는 사이가 좋았는 듯 하다. 이 중 장남인 알렉시우스와 차남인 안드로니쿠스는 동방원정에 동행하다가 병에 걸려 죽었기 때문에, 제위는 막내 마누엘에게 돌아갔다. (셋째인 이사키우스는 성미가 급해 요한네스의 눈 밖에 벗어난 듯하다.) 마누엘은 마누엘 1세 콤네누스가 되어 콤네누스 왕조를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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