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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이 살라딘의 손에 넘어갔지만, 아직 아르수프 북쪽 성채들은 예루살렘 왕국의 지배하에 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틴의 전투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예루살렘 왕국은 예루살렘을 재탈환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아르수프에 주둔한 기 드 뤼지냥은 언제 살라딘이 북진할지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국왕 기 드 뤼지냥 : 으으....우리 왕국엔 정녕 살라딘을 당할 자가 없단 말인가....
트리폴리 백작 레몽 : 3차 십자군이 도착했습니다! 잉글랜드 국왕 리처드가 직접 정예군을 이끌고 아크레 남쪽에 상륙했습니다!!
국왕 기 드 뤼지냥 : 하늘이 날 아직 버리지 않았구나! 어서 이리로 모셔라!!
잉글랜드 국왕 리처드 1세는 뛰어난 용기와 훌륭한 지휘력으로 '기사 중의 기사, 전사 중의 전사'라 불리는 서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다. 이런 자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 왕국을 도우러 왔다는 소식에 예루살렘 왕궁은 순식간에 흥분으로 들끓었다.
국왕 기 드 뤼지냥 : 먼길 고생하셨소! 드디어 도착했구려!
사자심왕 리처드 : .................
국왕 기 드 뤼지냥 : 여....여행의 피로로 기분이 별로 안 좋으신가 보구려. 허허허...
사자심왕 리처드 : 기 왕. 그대는 프랑스에 있을때 내 부하가 아니었나? 군신의 예를 표하지 못할망정 만나자마자 짐과 맞먹으려 들다니?
국왕 기 드 뤼지냥 : 그...그런 옛날 얘기를 지금 굳이 끄집어낼 필요가....다 좋은게 좋은거 아니겠소? 나도 지금은 명색이 국왕이니 옛일은 묻어둡시다. 허허허.....
사자심왕 리처드 :
무엄한 놈!!
국왕 기 드 뤼지냥 : 깨갱~
사자심왕 리처드 :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 살인강도짓으로 프랑스에서 추방당했으면서 너무 건방지구나! 여자 잘 만나 인생 편거지, 네 능력으로 국왕이 되었는줄 아느냐!?
국왕 기 드 뤼지냥 : 마...맞는 말씀이시긴 한데, 제 체면도 있으니 언성을 좀.... 여기 제 부하들도 듣고 있거든요....
사자심왕 리처드 : 네놈이 군을 어떻게 움직였는지 정도는 나도 보고를 받았다! 군대를 어떻게 움직여야 할 줄도 모르는 무능한 네놈 밑에 있다는 것이 예루살렘 최대의 비극이다!
트리폴리 백작 레몽 : (지당하신 말씀.)
국왕 기 드 뤼지냥 : (으으....이게 왠 개쪽이냐. 하필 옛날 주군이 원군으로 오다니...)
사자심왕 리처드 : 지금부터 예루살렘을 탈환할때까지 짐이 예루살렘 왕국의 모든 군대 지휘권을 가지도록 하겠다. 기왕은 아르수프에서 예루살렘을 탈환할때까지 대기하도록!
국왕 기 드 뤼지냥 : 리...리처드 폐하. 그래도 제가 명색이 일국의 국왕인데, 지휘권을 모조리 넘겨주면 너무 체면이 안서지 않습니까? 하다못해 군대 하나라도 좀....
사자심왕 리처드 : 아직도 제정신을 못차렸느냐! 멍청한 놈아! 네놈이 국왕이 된 후 몇개의 성채가 이집트로 넘어갔는줄 아느냐!?
국왕 기 드 뤼지냥 : ...죄..죄송합니다. 드리겠습니다.
사자심왕 리처드 : 필요없어!
국왕 기 드 뤼지냥 : ...네? 필요없다뇨?
사자심왕 리처드 : 아...아니, 왠지 거기선 그렇게 대답해야 할 것 같아서....짐의 실수다.
사자심왕 리처드 : 지금부터 예루살렘 왕국의 모든 군은 짐이 지휘하도록 하겠다. 살라딘을 물리치고 성지를 탈환하는날, 기왕은 예루살렘 왕국의 국왕으로서 모든 권한을 다시 되찾게 될 것이다!
국왕 기 드 뤼지냥 : (그날이 언제 오려나...)
리처드가 데려온 병사들은 소수의 정예기사와 서전트, 그리고 다수의 보병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예루살렘 왕국군은 리처드가 데리고 온 원정군보다도 암담한 수준이었다. 예루살렘 왕국이 자랑하던 성전 기사단은 거의 궤멸당해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고, 예루살렘 기사단도 연이은 패배로 경험없는 신병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래도 기사들의 수가 부족하여, 급히 모집한 민병대들로 간신히 머릿수를 유지하고 있었다.
사자심왕 리처드 : (상황이 힘들거라 예상했지만 상상 이상이구나... 이걸로 과연 예루살렘을 탈환할 수 있을까....)
국왕 기 드 뤼지냥 : 리처드 폐하. 언제 성지로 출발하실 겁니까? 군대도 준비되었으니 어서 성지를 탈환해야죠?
사자심왕 리처드 :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단단히 지키고 있다면 이 군대로는 어림도 없다. 더구나 케락과 아스칼론이 적에 손에 있는 이상, 예루살렘을 뺏어도 지킬 수가 없지.
사자심왕 리처드 : 살라딘이 예루살렘에 주둔하고 있는 동안, 군대를 모아 예루살렘 인근을 위협하하라. 다만, 살라딘이 공격나온다면 바로 퇴각하도록!
사자심왕 리처드 : 그 사이에 나는 직접 군을 이끌고 케락을 치겠다! 케락만 점령하면 배후 걱정없이 예루살렘을 공략할 수 있다!
국왕 기 드 뤼지냥 : 폐...폐하. 만약 살라딘이 군을 이끌고 나와 아르수프를 공격하면 어쩌죠? 제가 살라딘에게 잡힌다면 예루살렘 왕국 존망의 위기가 아닙니까?
트리폴리 백작 레몽 : (...당신이 왕위에 올랐을때 이미 예루살렘 왕국의 존망의 위기가 닥쳤지....)
사자심왕 리처드 : 살라딘이 아르수프를 공격한다면, 바로 회군해서 살라딘의 배후를 치겠다! 그러면, 아무리 살라딘이라도 버틸 수가 없겠지. 기 왕은 살라딘이 공격해 오면 성문을 단단히 걸어잠구고 내가 올때까지 버티도록 하라!
국왕 기 드 뤼지냥 : 그...그것 참 명안이군요! 그럼 전 문을 걸어잠구고 열심히 버티겠습니다!
트리폴리 백작 레몽 : (...한심하구나. 이것이 정녕 한 나라의 왕이란 말인가...)
3차 십자군으로 참여한 사자심왕 리처드가 케락을 위협한다는 소식은 곧바로 이집트 왕궁으로 전해졌다.
알 아딜 : 급보입니다! 케락이 리처드가 이끄는 십자군에게 위협받고 있습니다! 속히 구원군을!
살라딘 : 이건 양동작전이구나! 리처드는 내가 예루살렘 밖으로 나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알 아딜 : 하지만, 구원군이 없으면 케락이 위험합니다!
살라딘 : 걱정하지마라. 이럴 땐 적군과 정면으로 대적하지 않고, 본거지를 치면 회군할 수 밖에 없게된다. 그때를 노려 공격하면 된다.
알 아딜 : 과연 형님이군요. 안심입니다! 아르수프를 공격한다면 제 아무리 리처드라도 화들짝 놀라서 돌아갈것이 분명합니다.
살라딘 : (잠깐... 리처드가 그렇게 소문만큼 뛰어난 장군이라면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을텐데!? 설마 내가 아르수프를 치는 것을 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살라딘 : (그렇다! 이 방법이라면...)
살라딘 : 아르수프를 치지 않고 아크레를 친다!
알 아딜 : 혀...형님? 아크레는 아르수프의 북쪽....적군 영토 깊숙히 있습니다.
너무 깊이 들어가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살라딘 : 내가 아르수프를 공격한다면 리처드는 회군해서 나의 배후를 공격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아크레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회군하기엔 시간이 걸리지. 즉, 아크레를 위협하는척 하다 리처드가 북상하면 기다렸다 섬멸할 계획이다.
알 아딜 : 으음....그렇군요. 하지만, 아크레 주변은 온통 예루살렘 왕국의 영토입니다. 주력군이 전멸당했다지만, 잡병들이라도 끌어모으면 무시할만한 수준은 아닐텐데, 포위당하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살라딘 : 예루살렘군은 연이은 패배로 사기가 떨어져 있는데다, 국왕 기 드 뤼지냥은 하틴의 패배 이후 겁에 질려 있다더군. 목표는 아크레를 함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리처드를 회군시키는 것.... 아크레를 위협하여 그를 북쪽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살라딘 : 내가 없을 동안 예루살렘을 부탁한다. 전군 출진 준비!
알 아딜 : 무운을 빕니다, 형님.
살라딘이 아크레를 포위했다는 소식은 빠르게 리처드에게 전해졌다.
사자심왕 리처드 : 아르수프가 아니라 아크레를!? 살라딘이란 자는 생각보다 대담하구나!
국왕 기 드 뤼지냥 : 리처드 폐하, 어서 원군을! 아크레가 함락되면 아르수프는 이집트에 완전히 포위됩니다!
사자심왕 리처드 : (첩자의 보고에 따르면 살라딘은 아크레를 포위만 했지 공성무기를 만들고 있지 않다더군... 설마 적진 중간에 있는 아크레를 포위해서 항복을 받아내려는 무모한 작전일리는 없고, 분명 나를 꾀어내려는 술책이렸다...)
사자심왕 리처드 : (하지만 아크레를 버려둘 수가 없군. 만약 아크레마저 적에게 넘어간다면 아르수프 역시 함락된거나 마찬가지... 예루살렘 왕국은 완전히 끝장난다.)
사자심왕 리처드 : 전군 회군한다! 목표는 아크레를 포위한 살라딘! 내가 도착할때까지 예루살렘 왕국군은 절대로 살라딘과 싸우지 말고, 단단히 도시를 지키도록 하라!
하지만 살라딘도 리처드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있었다.
바로, 아크레 주둔군을 지휘하는 자, 제라르 리르포르의 존재...
이교도에게 가장 무자비하고 호전적인 성전기사단의 단장이었다.
제라르 리르포르 : 살라딘이 직접 죽으러 찾아왔구나! 형제들의 원수를 갚을때가 왔다!
전군 출진 준비!!
부관 : 제라르님! 리처드 폐하께서 도착할때 까지 절대로 살라딘과 싸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제라르 리르포르 : 이교도들을 눈 앞에 두고 싸우지 말라는 것은 언어도단!
그리고, 리처드가 뭔데 성전기사단에게 명령을 내린단 말인가!? 기 왕이 리처드에게 예루살렘군 지휘권을 주었을지는 몰라도, 성전기사단의 지휘권을 준 적은 없다!
제라르 리르포르 : 살라딘의 목을 베어 이 전쟁을 끝내자! 전군 출진하라!!
제라르 리르포르는 헨리 2세가 성전기사단에 기부한 돈으로, 왕국 북쪽의 모든 병사들을 끌어모아 살라딘의 2배에 이르는 병사를 동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예 기사들은 이전의 전투로 거의 궤멸했고, 새로이 모집한 병사들은 대부분 경험이 부족한 병사들과 충성심이 부족한 용병들뿐... 숫적으론 우세해도 제라르가 살라딘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하다고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제, 살라딘과 마지막 성전기사와의 전투가 아크레에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헨리 2세의 기부금: 잉글랜드 대주교 토마스 베켓은 헨리2세의 여러 정책을 반대하였는데, 헨리 2세가 화를 내자 충성스러운 기사들이 성당으로 달려가 토마스 베켓을 죽여버린 사건이 있었다. 이 때문에 헨리2세는 교황에 사죄하고 성전기사단과 구호기사단에 막대한 금을 사죄금 명목으로 기부하였다. 참고로, 헨리2세는 사자심왕 리처드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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