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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리뷰]

[리뷰] 토먼트.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 RPG

by 구호기사 2008.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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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ment n.  고통. 격통. 고뇌
 
 
한 노인이 어두운 길에 홀로 앉아 있었어.

그는 어느방향으로 가야하는지 몰랐고,
그는 행선지와 자신이 누구인가를 망각하고 있었어.
그는 피곤한 다리를 쉬게 하기 위하여 잠시 앉았지,

그리고 올려다보니 갑자기 눈앞에 어떤 노인이 있는거야.
그녀는 이빨도 없이 싱긋 웃었지, 그리고 깔깔거리면서 말했어

"이제 당신의 세번째 소원을 말할 차례요 무엇을 원하시오?"
"세번째 소원?"
남자는 당황했어.
"첫번째와 두번째 소원도 말한적이 없는데 어떻게 세번째 소원을 말하라는 거요?"
"당신의 두 소원은 이미 성취되었소" 노파가 말했지.

"하지만 당신의 두번째 소원은 모든걸 첫번째 소원을 말하기전 상태로 되돌려 달라는 것이었소.
그래서 당신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거요.
왜냐하면 모든것이 정확히 당신이 어떤 소원도 말하기전 상태로 되돌아갔기 때문이오"
그녀는 불쌍한 노인을 보며 깔깔 웃었지

"그래서 하나의 소원만 남은거요 "

"좋소" 노인이 말했어

"나는 이 얘기를 믿지 않소. 하지만 소원을 말해서 손해볼건 없으니까..
.....
.....
.....

나는 내가 누군지 알고싶소"

"재미있군"
노파는 소원을 들어주고 영원히 사라지며 말했어

"그게 바로 당신의 첫번째 소원이었소"
 
  
 
(리뷰를 보시기 전에 간단히 알아두면 좋은 상식 하나.)
 
 
이 게임의 정식 명칭은 플레인 스케이프: 토먼트 입니다.
여기서 플레인 스케이프는 이 게임이 사용하고 있는 D&D 세계관 중에 하나이며, 토먼트가 게임의 제목입니다. 지금까지 나온 D&D룰 기반의 게임들은 다음과 같은 세계관을 쓰고 있습니다.
 
발더스 게이트 : 포가튼 랠름
아이스윈드데일 : 포가튼 랠름
토먼트 : 플레인 스케이프
템플 오브 엘레멘탈 이빌 : 그레이호크
풀 오브 레이디언스 : 포가튼 랠름
네버윈터나이츠 : 포가튼 랠름
 
때문에, 이 게임을 부를 때 종종 플레인 스케이프 라고 부르는 유저들이 많은데, 발더스 게이트를 포가튼 랠름 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 처럼, 이 게임 역시 정식 명칭인 토먼트 라고 불러야 옳습니다. (가끔씩 '토너먼트' 라고 부르는 유저를 보면 정말 OTL...)
 
 
그러면 플레인 스케이프 세계관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위의 D&D게임 리스트를 보면 묘하게 포가튼 랠름 세계관이 많은걸 볼 수 있습니다. 꼬깔모자를 눌러쓴 대마법사,고집스러운 드워프와 고귀한 엘프, 교활한 드로우엘프와 사악한 듀에르가, 그리고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환타지의 몬스터는 포가튼 랠름을 가장 대중성있는 세계관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덕분에 포가튼 랠름은 'D&D' 하면 떠오르는 가장 친숙한 세계관이 되었으며, 가장 많이 게임화된 세계관이기도 합니다.
 
반면 플레인 스케이프 세계관은 모든 D&D 세계관 중 가장 뒤늦게 만들어진 세계관입니다. 플레인 스케이프에서 가장 주력한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신, 악마, 천사와 같은 고차원적 존재의 수치화
-아웃터 플레인(비유하자면 '저승') 의 세부적인 설정
-다른 모든 세계관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세계관(다원우주 개념)의 정립
 
이 세가지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중요한 건 세번째입니다. 즉, 플레인 스케이프란 세계관 안에 다른 모든 세계관(포가튼 랠름이든지 그레이호크든지)이 포함되어 있다는 개념으로, 모든 세계관을 아우르기 위해 다원우주 개념을 사용했습니다. 이거 깊이 설명하자면 한도 끝도 없으므로 간단한 비유로 설명하자면, 플레인 스케이프에선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와 북구신화의 오딘이 같이 등장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신들은 이전의 다른 세계관에선 그냥 '강하고 범접할 수 없는 존재' 정도로 정의되었지만, 플레인 스케이프에선 수치가 세부적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신들은 대단히 강력하고 일반적인 존재는 만날 수 조차 없지만, 자신이 있는 차원에 실제로 존재하는 개념으로 설정됩니다. 즉, 아주 강력한 적과 싸우면 신도 죽을 수 있는 세계관이 바로 플레인 스케이프입니다.
결국 토먼트의 배경은 포가튼 랠름으로 대표되는 평범한 환타지세계와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름없는자  "우린 어디에... 갇힌 건가? 이 곳은 대체 어딘가?"
모트  "그것은 '시체안치소'라고 불리지... 임신한 거미만큼이나 매력적인 모양새의 커다란 검은 건물이라고."
 
주인공은 시체안치소에서 깨어납니다.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자신의 이름조차 모릅니다. 더 황당한 것은, 듣도 보도 못한 둥둥 떠다니는 시끄러운 해골이 다가와서 이것저것 참견한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이 오직 알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모든 기억을 잃었다는 것과, 자신은 죽지 않는 불사신이라는 것 뿐. 자신의 등에 새겨진 '파로드를 찾아라' 라는 문신만을 단서로, 주인공은 '나는 왜 모든 기억을 잃었는가' 와 '나는 왜 죽지 않는가' 의 해답을 찾아 모험을 떠나게 됩니다.
 
토먼트는 첫인상에서 볼 수 있듯이, 결코 가벼운 게임이 아닙니다.
 
 많은 게임이나 만화에서 '불사신' 이란 컨셉은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며, 액션을 강조시켜주는 주된 요소가 됩니다. 하지만, 토먼트에서의 '불사신'은 결코 축복받은 요소가 아닙니다. 이름없는자는 '왜 남들처럼 죽을 수 없는가' 에 대하여 고민하며 고통받으며, 만나는 많은 사람들은 주인공이 불사신이란 사실에 놀라지만, 부러워하지는 않습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해 환상을 가진 일부 인물들은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토먼트의 이야기는 이름없는 자의 자아를 찾기 위한 여행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인공이 죽지않는 불사신이면 게임이 너무 쉬워지는게 아니야?
 
맞습니다. 토먼트의 난이도는 무척 낮은편입니다. 이는 유저가 힘든 전투에 매달릴 필요 없이, 스토리에만 신경 쓸 수 있도록 한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불사신이라도 게임오버가 될 수는 있습니다. 스토리의 진행에 중요한 NPC를 죽였다던가, 불사신이라도 존재 자체를 말살할 수 있는 강대한 신과 같은 존재에 덤볐을 경우, 혹은 주인공이 다른 차원에 영원히 갇히거나 미쳐버릴 경우에도 게임 오버가 됩니다. 또, 불사신을 죽일 수 있는 무기로도 죽을 수 있습니다.
 
즉, 이름없는 자는 불사신이지만 무적은 아닙니다.

이름없는자  "하지만...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소? 그들은 어떻게 죽었소?"
다콘  "나는 믿음의 죽음을 죽었소. 해골은 용기의 죽음을 죽었소. 여자는 비애의 죽음을 죽었소. 궁수는 최종적이고 가장 편안한 죽음인 육신의 죽음을 죽었소. 당신... 당신은 기억의 죽음을 죽었소."
 
토먼트의 스토리에서 특이할만한 점은, 이름없는 자가 주도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게 아니라, 예전에 자신이 걸었던 자신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는 와중에서 예전의 자신이 행했던 여러가지 행동들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듣게 되며, 점차 자신이 어떤 인물이었고 어떤 일을 했었는지 알아간다는 점은 마치 한편의 잘 만든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영화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반전영화로 나름대로 이름이 있는 메멘토의 경우 토먼트와 상당히 흡사한 컨셉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억을 잃은 주인공이 몸에 새겨진 문신을 통해 자신의 기억을 추론한다는 점은 영화의 각본을 쓴 사람이 토먼트의 영향을 직 간접적으로 받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흡사합니다.)
 
기억을 되찾으려는 불사신, 이름없는 자.
이름없는 자를 알아보고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는 생면부지의 인물들.
이유는 모르지만, 강렬한 증오심을 가지고 이름없는 자를 공격하는 그림자(Shadow)들.
뭔가 숨기는 것이 있어보이지만 자세한 설명을 피하는 동료들.
 
게임이 진행되면서, 혹은 이름없는 자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점차 비밀이 하나씩 밝혀질 수도 있고, 엔딩을 볼때까지 감추어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비밀에는 유저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반전이 숨어 있는데, 이것을 밝혀나가는 과정이 하나의 잘 만든 스릴러 소설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름없는 자는 유저가 어떻게 플레이하느냐에 따라 그 성장이 달라진다.
 
RPG의 주인공은 편의상 대략 2가지 패턴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정해진 주인공 과, 만드는 주인공' 입니다.
 
정해진 주인공은 일본식 RPG 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배경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스토리의 컨셉을 짜기가 쉽습니다. 예를 들어 정의감에 불타는 왕국 기사라든지, 아니면 모험심에 불타는 햇병아리 청년이라든지, 아니면 보물을 노리는 트레져 헌터라던지.. 이런 식으로 주인공을 정해놓으면 이야기를 만들기 쉬워지며, 과거의 일에 대하여 언급할 때도 편해집니다. 반면에, 이런 식으로 정해진 주인공은 유저가 감정이입을 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물론, 유저의 성격이 게임상의 주인공과 흡사하다면 나름대로 감정이입을 할 수 있겠지만, 유저와 전혀 동떨어진 느낌을 주는 주인공이라면, 유저는 '자신이 환타지 세계를 모험한다는 느낌' 을 받지 못하고 '3인칭 시점으로 다른 녀석이 모험하는걸 구경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만드는 주인공은 대부분의 서양식 RPG에서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주인공을 직접 만들게 되면 유저의 취향에 맞는 주인공을 직접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감정이입을 하기 좋습니다. 또, 여러번 플레이 할때 다른 패턴의 주인공을 만들 수 있어, 게임을 질리지 않고 비교적 오래 즐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다만 이 방법을 쓰면, 스토리상 주인공의 과거에 대해 언급하기가 상당히 힘들어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물론, 발더스 게이트2 와 같이, 주인공의 종족이나 성별에 따라 일일이 다른 텍스트를 출력하도록 한 게임도 있지만, 이는 상당한 노가다가 요구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봐서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토먼트는 그래서인지 이 두 패턴의 장점을 혼합한 방식을 쓰고 있습니다. 이름없는 자는 일단 정해진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저가 이름없는 자의 과거에 대하여 어떤 손길도 미칠 수 없으며, 정해진 컨셉에 따라 '이름없는 자' 란 캐릭터의 배경은 모두 정해져 있습니다. 성별은 물론 '남자'로 고정되어 있으며, 심지어 이름마저 '이름없는 자'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유저의 손길이 미칠 수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주인공은 시작 시 자신의 취향에 맞게 스탯을 줄 수 있으며, 이름없는 자가 레벨업을 할 때 얻는 스탯도 배분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전사, 마법사, 도적의 직업 중에 하나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습니다. 초반엔 오직 무기만 휘두르는 전사로 살아가겠지만, 현명한 노파를 만나 마법의 정수에 대해 배운다면 마법사의 마법을 쓸 수 있으며, 도적기술을 가진 동료나 NPC에게 스킬을 배운다면 도적으로 전직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주인공은 기억을 잃어서인지 신앙심이 없어서 성직자로는 전직할 수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스탯과 직업을 선택할 수 있기에, 유저의 취향에 따라 거대한 도끼를 휘두르는 강인한 전사가 될 수도 있고, 후방에서 강력한 마법을 시전하는 마법사가 될 수도 있으며, 그림자에 숨어서 강력한 암습을 가하는 도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가치관 역시 후천적입니다.
이름없는 자는 모든 기억을 잃었기에, 게임을 처음 시작하면 True Netural 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게임을 진행하면서 NPC와의 약속과 계약을 충실히 이행한다면 가치관의 Lawful 로 서서히 변할 것입니다. 반면에 거짓말을 하고 약속을 종종 깬다면 가치관은 Chaotic 으로 서서히 변합니다. 또, 약한자를 돕고 선행을 하면 가치관이 Good 으로 변하고, 악행을 일삼고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다면 가치관이 Evil 로 변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변한 가치관은, 가치관이 장식에 불과했던 다른 D&D 게임들에 비해, 게임 전반에 걸쳐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됩니다. 덧붙여, 유저가 감정이입을 해서 자신의 성격대로 선택지를 고르게 된다면, 엔딩 볼 때 쯤엔 자신의 성격을 반영한 가치관이 완성되어 있는 점도 재미있는 점입니다.

당신에겐 이름이 없다. 당신은 시길의 시체안치소 안의 석판 위에서 온몸이 문신과 상처투성이인 채로 깨어났으며 아무런 기억도 없다. 누가 왜 이런 짓을 했는가? 아직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당신은 알아내고 말 것이다.
 
 
'이름없는 자' 란 캐릭터엔 또다른 재미있는 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엔딩을 볼때까지 주인공의 본명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주 인공은 언제나 '나는 누구인가?' 를 묻고 다니지, '내 이름은 무엇이었나?' 를 묻지 않습니다. 엔딩을 볼 때 까지 이름없는 자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 유저는 이름없는 자의 이름을 자기마음대로 상상해서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둘째로, 외모가 매우 개성적이면서도 보편적입니다.
이름없는 자는 일단 남성이긴 합니다만, 외모를 통해 나이를 짐작하기가 매우 힘이 듭니다. 대충 20대에서 50대까진 커버가 되는 외모입니다. 언제나 불타고 몸이 찢어져도 준수한 외모를 유지하는 타 게임들의 불사신들과는 달리, 이름없는 자는 죽었다가 살아나더라도 상처가 완벽히 재생되지 않습니다. 그의 온몸은 상처와 화상투성이이며, 기억을 잃었을때를 대비한 문신이 온몸에 새겨져 있는데다, 향료로 처리된 딱딱한 피부 덕분에 언듯 보면 좀비와 같은 언데드로 보일 정도입니다. 덕분(?)인지는 몰라도, 토먼트를 플레이하는 남성 유저라면, 자신의 얼굴이 저렇게 변했다고 생각하면서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즉, 토먼트의 주인공은 미리 만들어진 배경 컨셉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유저의 감정이입과 취향에 맞춘 육성을 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토먼트의 귀염둥이 모트
 
지금까지의 설명만으로 보면 지나치게 딱딱하고 무거운 게임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토먼트에선 정말 위트넘치는 말장난들이 많으며, 특히 이름없는 자와 모트의 만담을 들어보면 정말 왠만한 개그보다 웃깁니다. 특히, 이 떠다니는 해골 모트는 처음 보는 유저들에게 거부감이 드는 디자인이지만, 게임을 진행할수록 이녀석이 하는 개그 덕분에 정이 쏙쏙 붙는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자칫 지나치게 진지하고 무거워 질 수 있는 스토리를, 곳곳에 있는 재치있는 개그들로 균형을 잘 잡아놓았습니다.
 
모트 말고도 다른 동료들도 일반적인 RPG 게임에서 보기 힘들정도로 개성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념과 의리를 중시하는 늙은 기스져라이 다콘, 성격 괄괄한 여성 티플링(악마와 인간의 혼혈) 안나, 온몸이 불타는 마법사 이그너스, 서큐버스이면서도 성직자의 길을 걷는 폴 프롬 그레이스, 악을 섬멸하는 것이 목적인 움직이는 갑옷 베일러 등 다양하고도 개성적인 동료들 덕분에 게임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됩니다. 특히, 각각의 동료들은 모두 자신만의 과거를 가지고 있어서, 주인공의 능력과 선택에 따라 이들의 과거를 알 수도 있으며, 경우에 따라 다양한 보너스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동료의 마음에 있는 굴레를 벗겨준다면, 그 동료는 주인공에게 더욱 감복할 것이고 때에 따라 더욱 높은 능력치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개성적인 동료는, D&D를 모르는 유저에겐 오히려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D&D 세계관을 잘 알고 있는 유저가 다콘을 만났다고 칩시다.
다콘은 림보에 주로 거주하는 기스져라이란 종족 입니다. 림보 차원은 Chaotic - Netural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기스져라이 역시 Chaotic - Netural 가치관을 주로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다콘은 정 반대인 Lawful - Netural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말투 역시 다른 기스져라이와 판이하게 다른 말투를 쓰고 있습니다. 여기서 D&D 세계관을 잘 아는 유저라면, 자연히 다콘이 자신의 종족과 정 반대의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는지 의문을 가지게 되며, 자연스럽게 동료에 대해 흥미와 애착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반면 D&D 세계관을 전혀 모르는 유저가 다콘을 만났다고 칩시다.
일단 대머리에 말라빠진 노인네인데다 말투도 괴상망측하다보니 일단 첫인상이 아니올시다 입니다. 더구나 드워프, 엘프와 같이 친숙하면서도 전형적인 종족이 아니라, 기스져라이란 듣도 보도 못한 괴이한 종족입니다. 결국 다콘의 특이한 말투와 성격은 기스져라이란 종족의 특징이라고 단정짓고 그냥 무심하게 넘겨버리게 됩니다.
 
이렇듯, 토먼트의 스토리는 D&D 세계관을 잘 아는 유저이냐, 아니면 전혀 모르는 유저이냐에 따라, 그 이해와 감상이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어비스의 분노
타나리와 비교하면 적어도 바테주는 품위가 있는 편이다. 아마 재갈이 풀린 어비스의 분노보다 더 끔찍한 것은 없을 것이다. 이 주문은 사용하면 땅이 두 쪽으로 갈라지고 희생자는 광분하는 타나리들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이 주문은 지정된 희생자의 발 밑에 차원의 문을 열어 어비스로 끌고 내려간다. 문은 희생자를 삼킨 후에도 그대로 남아있다. 구경꾼들이 들을 수 있는 소리라고는 잔인한 타나리에게 갈기갈기 찢기고 있는 희생자의 끊임없는 비명뿐이다. 몇 초로 생각되는 시간이 흐른 후(희생자에게는 어비스에서의 시간이 영겁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문은 희생자(또는 그의 잔해)를 내뱉는다.
 
토먼트의 그래픽은 당시 발매된 시기(발더스 게이트1 발매 후 발매되었습니다.) 를 볼 때 매우 놀라운 수준입니다. 발더스 게이트나 아이스윈드데일보다 훨씬 크고 정교해진 캐릭터들은, 정말 같은 엔진을 써서 만든 게임인지 의문이 갈 정도로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다른 인피니티 엔진 게임에서 볼 수 없었던, 달리기 라던가, 크리티컬 히트시 멋진 화면 효과, 그리고 화려한 마법효과는 다른 인피니티 엔진 게임과 확실한 차별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법의 효과는 정말 대단해서, 강력한 셀레셜 호스트 같은 마법은 화면이 1분정도 정지한채 온갖 화려한 마법효과가 난무하며, 최강 마법인 토먼트의 룬 같은 마법은 아예 전용 동영상이 뜹니다. 오죽했으면, 이후 발매된 발더스 게이트2나 네버윈터나이츠 같은 게임들조차 마법효과 면에선 토먼트에 비교당해서 평가절하 당할 정도였으니... (물론 스토리상의 평가절하가 더욱 컸습니다....;;) 더구나 전체적으로 칙칙하고 암울한 분위기의 색감과 플레인 스케이프 세계관의 기괴한 배경 디자인이 잘 어우러져, 다른 차원의 이질적인 느낌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데이오나라
유령과 같은 한영인 데이오나라는 그녀가 당신을 알고 있으며 자신이 바로 당신의 연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토록 오랫동안 죽음의 손길을 피하다니 그녀를 현세에 묶어두고 있는 것은 대단히 강력한 무언가가 틀림없다. 사망조차 그녀의 기질을 바꾸지는 못한 것 같다.


토먼트의 사운드 역시 대단한 수준입니다.
BGM의 경우 히어로즈 시리즈의 오페라 처럼 강렬한 임펙트를 주진 않지만, 동료들과 중요 NPC들 마다 전용 테마가 있으며, 그 멜로디가 캐릭터의 이미지와 정말 잘 어우러집니다. 특히 이름없는 자의 테마와 데이오나라의 테마는 정말 최고의 BGM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름없는 자의 테마는 처음 들으면 그냥 음침한 음악이라고만 느껴지는데, 엔딩을 한번 보고 다시 들어면 정말 새로운 느낌을 줍니다.
 
성우들의 연기도 뛰어납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이름없는 자의 목소리입니다. 마치 인생의 절망을 맛본 듯한 낮으면서도 목이 쉰듯한 목소리는, 마치 그의 고난한 여정을 대변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다른 캐릭터들의 목소리 역시 대단히 잘 어울리며, 특히 톤이 낮고 느릿하면서도 힘있는 다콘의 목소리가 인상 깊었습니다.
 
하지만 텍스트가 워낙 방대한 게임이다 보니, 음성이 나오는 부분은 대단히 제한적입니다.
동료들은 대부분 이동과 전투할 때를 제외하면 목소리를 듣기 힘들며, 이름없는 자 역시, 극소수의 중요 이벤트에서만 짤막한 대사를 말하며, 대부분의 대화에선 침묵합니다. 물론 사상 최대 분량의 텍스트 덕분에 음성을 많이 쓰기 힘들었기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이름없는 자 "나는 이 장소를 떠날 방법을 알아야만 하오. 당신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지니고 있소?"
래벌 "나는 이 곳의 가지들이 뒤틀리고, 구부러지며, 땅으로 파고드는 것에 대해 빠짐없이 알고 있네. 이 곳에는 잎들(leaves)은 없지만, 원한다면 떠날(leave) 수는 있네."
 
 
토먼트의 모든 장점들을 살려주는 최고(?)의 장점은 바로 완벽한 한글화 입니다.
제 아무리 스토리가 뛰어나고 절정의 게임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Good Morning' 을 '좋다. 아침' 으로 번역하는 마이트 앤 매직6 의 센스로 번역을 했다면 말짱 도루묵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토먼트의 번역은 단 한분(!)이 1여년에 걸쳐서 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번역의 수준이 대단히 높고, 존대말과 반말이 섞이는 고질적인 한글화 게임의 단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영어식 말장난과 은어에 대해선 무리하게 의역을 하지 않고, 괄호를 넣고 주석을 달아놓아 이해하기 쉽도록 해 놓았습니다.
 
토먼트의 경우 대단히 방대한 텍스트량과, 또 수많은 전문용어와 은어들 덕분에 영어에 정통한 유저라도 해석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매뉴얼에 '전문용어 사전' 까지 동봉... -_-;) 하지만, 높은 수준의 한글화 덕분에, 한국유저들은 비교적 손쉽게 게임을 플레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글패치가 너무나도 늦게 나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국에선 영문패키지를 먼저 발매하고 그 다음 한글패치를 공개했는데, 이 한글패치 공개 시기가 너무 늦었습니다. 뭐 덕분에 완벽한 한글화에 성공했지만, 차라리 한글화를 한 뒤에 발매하는 전략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토먼트의 한글 패치가 이슈화 된 시기엔, 이미 토먼트 패키지의 판매 사이클이 지난 터라 판매량에 영향이 미미했기 때문입니다. (덕분인지는 몰라도 삼성은 이후 게임 패키지 유통에서 철수했죠.)뭐, 동시 한글판 발매라는 무리수를 두다가 번역이 완전 망가진 네버윈터나이츠 같은 게임을 보면, 높은 퀄리티의 번역과 빠른 한국 발매는 양립하기 힘든것 같습니다.

가...가지고 싶다!!!
 
 
토먼트는 외국에선 상당히 롱런한 게임이지만, 한국 판매 실적은 대단히 미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여러가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38000원 이라는, 당시로서도 꽤 높은 가격.
2. 왠 쭈글텅이 남자가 얼굴을 드리밀고 있는 패키지 디자인. -_-;
3. D&D 마니아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이질적이면서도 난해한 세계관.
4. 영문판 선행발매 (덧붙여 해석이 어려운 문어체의 대사들)
5. 무시무시한 대사량
 
나중에 게임잡지의 번들로 제공되었지만, 번들유저들은 참재미를 느끼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패키지에 들어있는 세계관 설정집과 은어사전이 빠져있습니다. 둘째로, 번들이라면 빠지지 않는 공략... 토먼트야말로 공략 보면서 플레이하면 원래 재미의 반도 느끼기 힘든 게임입니다. 토먼트는 스토리를 즐기게 하려는 의도로 게임의 난이도가 대단히 낮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공략집을 보지 않더라도 원활한 게임 진행이 가능합니다. 때문에, 번들로 공략을 보면서 플레이한 유저들은 패키지로 플레이한 유저들보다 평이 그저 그런 편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입니다.

이름없는 자여. 그대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이름없는 자가 자신의 과거를 되찾는 여행의 끝에... 저는 엔딩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쭈그러진 시체와도 같은 주인공이 뭐가 어쨌길래 저는 눈물을 흘렸던 걸까요...
 
어떤 분이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이름없는 자는 환타지 세계에 투영된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이름없는 자의 과거를 찾는 모험은 우리의 자아를 찾는 모습에 투영되기에, 우리는 이름없는 자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 역시 동감입니다. 정말 게임 내내 최고로 감정이입이 되었기에, 이름없는 자가 마지막에 선택한 길에 저는 고통스러우면서도 수긍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토먼트는 당당하게 '제 인생 최고의 게임' 으로 꼽는 작품이며...
이 작품을 플레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제 게임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한 일 중에 하나였습니다.
 
제작진 일동과 한글화 하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본문에 사용된 스크린샷은 네이버의 차칸계모님과 루리웹의 한마리그리뽕님에게 허락을 맡고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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